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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경제와 산업
북한 경제 체제의 특징은 사회주의 소유 제도와 중앙 집권적 계획 경제로 설명된다. 사회주의 소유 제도는 사회에 의한 생산 수단의 집단적 소유 체제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1946년 북한은 토지, 공장·광산·은행 등 주요 산업, 지하자원·산림·수역 등 자원에 대한 국유화를 진행하였고, 1953년 한국전쟁 이후 전후 복구 과정에서 협동조합을 만드는 등 집단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중앙 집권적 계획 경제는 경제적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국가계획위원회로 대표되는 중앙 당국에 집중시키고, 당국에 의해 수립된 계획은 하부 조직으로 하달되는 체제이다. 하부 조직은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기에 ‘중앙 집권적 명령형 계획경제’라고도 이해될 수 있다.
북한 경제 정책은 시대별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그 기조는 유지되어 왔다. 1960년대 김일성 시기에는 크게 ‘자립적 민족 경제 건설 노선’, ‘중공업 우선 발전, 경공업·농업의 동시 발전 노선’, ‘경제·국방 건설 병진 노선’ 등이 있었다. 하지만, 국가 내부에서 생산 및 소비의 전 과정을 소화하는 폐쇄적인 경제 노선은 국제적 분업이 활발한 세계화 시대에 적합하지 않았다. 김정일 시기 역시 ‘선군 경제 건설 노선’을 주요 경제 정책 기조로 삼았고, 인민들의 실질적인 생활 수준 향상보다는 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군산 복합형 산업 구 조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기조는 1990년대 소련의 붕괴 및 공산권의 붕괴, 고난의 행군으로 일컬어지는 경제난 및 식량난에도 이어졌고, 북한의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 나갔다.
1999년을 기점으로 북한의 경제는 회복세를 보였으나, 2006년 이후 정체되는 추세이다. 김정은은 2013년 ‘경제·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경제 정책 기조로 채택하였으나, 이는 산업의 불균형을 가속하고 국제적인 대북 제재를 초래하는 등 북한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2022년 현재 –0.2%의 경제 성장률과 143만 원의 1인당 국민 총소득(GNI)을 기록하고 있다. 북한의 명목 GDP는 36조 원 규모로, 2,161조 원 규모의 남한과는 상 당한 차이를 보인다.
산업 구조는 2022년 현재 농림어업 23.1%, 광공업 30.5%, 전기·가스·수도업 2.2%, 건설업 10.8%, 서비스업 33.4%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은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인다. 이는 지금껏 이어져 온 북한의 공업 중심 경제 성장 정책 및 전반적인 경제 정책 기조의 실패와 2016년 4차 북한 핵실험 이후 국제 사회의 강화된 제재(맞춤형 제재에서 포괄적 제재)가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북한 지역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황해남·북도의 경우 1차 산업 종사 인구의 비율이 58.1%와 45.6%로 가장 높다. 평안남도는 2차 산업 종사자 비율이 44.3%로 가장 높은데, 이는 북한에서 석탄 매장량이 가장 풍부한 평남남부탄전, 평남북부탄전과 북한의 주요 산업 시설인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남포제련소 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산업 발달에서 서비스업의 성장은 더딘 편이어서 평양직할시를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대체로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자력 갱생 정책에 따라 에너지 공급의 상당 부분을 석탄과 수력에 기대고 있다. 2003년 자원별 1차 에너지 공급 비중은 석탄 69.3%, 수력 18.2%, 석유 7.6%, 기타 4.9%였지만, 2022년 현재 석탄 54.6%, 수력 30.8%, 석유 5.3%, 기타 9.3%로 석탄의 비중이 다소 감소하고 수력의 비중이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석유의 에너지 공급 비중은 연도별 증감의 폭이 컸는데, 이는 석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지만, 국제 제재, 북·중 관계 등 외부적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 북한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북한의 식량 작물 생산량은 연도별 증감률의 차이는 있지만 2004년 431만 톤에서 2023년 482만 톤으로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북한에서 필요한 총 곡물량을 659만 톤으로 추계하였는데, 오늘날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부족분은 중국으로부터 수입 혹은 국제사회의 원조를 통해 일부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현재의 식량 생산량을 유지하고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기조가 유지된다면, 향후 북한의 식량수급은 불안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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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자립적 민족 경제 건설 노선을 기반으로 제한적인 대외 무역을 시행해 왔다. 이러한 노선에 따라 북한은 대외 경제 관계를 보완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하여 필수적인 원자재 등을 최소한으로 수입하는 데 그쳤고, 이마저도 주로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교역을 통해서 해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교역의 한계를 느낀 북한은 1970년대부터 점차 대외 경제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1991년 최초로 나진·선봉 지역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선포하고 외국인 투자 관련법 등을 제정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외국 자본의 유치에 힘썼다. 뒤이어 김정일 체제 하에서 2002년 9월 신의주행정특구, 10월 개성공업지구, 11월 금강산관광지구 등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2010년 천안한 폭침 사건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지구 등 남북 경협사업이 위축되자 북한은 대중국 개방을 확대하였다. 그 일환으로 나진·선봉경제특구를 2010년 1월 특별시로 승격시켰으며, 2011년 6월 황금평·위화도경제특구에 대해 중국과 공동 개발 및 관리를 선포하였다.
경제특구 정책은 김정은 체제에 들어 더욱 본격화되었으며 그 대상이 북한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2013년 5월 ‘경제개발구법’ 제정과 함께 각 도에외자 유치와 경제 개발을 목표로 13개의 경제개발구를 설치하였으며, 이와 함께 신의주를 새로운 특구 지역으로 선정하였다. 또한, 2014년 7월에는 은정첨단기술개발구 등 6개 개발구를, 2015년 4월 무봉국제관광특구, 2015년 10월 경원경제개발구, 2017년 12월 강남경제개발구를 추가 지정하였다. 경제개발구는 중앙급과 지방급 개발구와 함께 공업, 농업, 관광, 수출 가공, 첨단 기술 등의 분야로 특화하여 개발 중이며, 기존의 경제특구를 포함해 총 27개의 특수경제지대를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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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에 의한 대북 제재는 강화되었고, 기존의 열악한 인프라와 낙후된 물류 체계 등 내부적 문제, 개성공단 중단과 같은 실패 사례 등이 겹쳐 북한의 경제개발구의 추진은 난항을 겪고 있다. 여러 정책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2003년부터 2022년까지 북한의 수출입액은 최소 7억 달러에서 최대 76억 달러 규모를 유지하였으며, 이는같은 기간 3,720억 달러에서 1조 4,000억 달러 규모까지 커진 남한의 수출입액 합계보다 월등히 적은 수치이다.
북한의 계획 경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원활한 공급과 배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1990년대 경제난을 겪으며 암시장인 ‘장마당’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식량과 공산품 등이 거래되었다. 북한은 2002년 7월 1일 ‘경제 관리 개선 조치’ 도입을 통해 기존의 중앙 집권적 계획 경제 제도에 시장 경제적 요소를 일부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후 시장화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자 상행위 단속, 종합시장 폐쇄, 화폐 개혁 등의 조치를 시행하였으나, 2010년 2월부터는 다시 시장 활동 허용 등 통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2022년 현재 북한 전역에서 414개의 종합시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돈주’와 같이 상업 자본의 축적을 통한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북중 간 공식 및 변경 무역, 밀수 등을 통한 다양한 재화의 유통에서부터 아파트 건설과 매매 등 건설업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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